2015년 7월 10일 기독교사라고 하는 내가?
로마서 2장 17절에서 29절 말씀을 묵사해봐요. 17절 말씀을 보면,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이어서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오늘 묵상한 말씀은 저에게 많은 양심의 찔림을 가져다 주었어요.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해진다고 이찬수목사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만큼 무언가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되면 자기중심성에 빠지기 싶다는 이야기 인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교회가 맞고 다른 교회가 틀리다는 그런 교회중심성에 빠지기도 하는 것 같고요. 요즘 한국교회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다들 자신이 다니는 교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진 것 같아요. 반대로 자신의 교회만 그런것 같고 다른교회는 멀쩡한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런것이 그림자인것 같아요. 유대인들의 긍지는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바로 가르치기만 좋아했다는 거죠. 저 또한 가르치는 직업에 있기 때문에 계속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는 실천이 없었어요. 메시지 성격을 보면,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인도한다고하지만, 정작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라고 물어요. 그리고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분의 법에 대한 온갖 유창한 언변을 늘어놓으며 용케도 잘 빠져나갑니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닙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삶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하나님의 기준으로 봐서는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하나님의 기준은 절대 듣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아니니깐요. 그것을 얼마나 삶으로 증명했는지를 보니깐요. 묵상하면서 주님이 이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돼요. 마태복음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강조하고 있어요. "듣고 행하는 자라야" 하면서, 행함을 강조하고 있어요. 주님의 기준을 바로 그거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적용해 보고 싶어요. "믿음은 들음에 난다고 하지만, 구원은 행함을 통해서 받을 수 있다"라고요. 좀 극단적인 표현인것 같지만, 제가 생각하는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를 상상한거에요. 어떤 목사님의 고백이 있었어요. "나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문학이었던 것 같다" 그말을 잊을 수 없네요. 내가 아이들 앞에서 그냥 교과서의 지식만 가르치는 교사인가? 아니면 어떤 교사인가? 묻게 되는 것 같아요.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기독교사이고 싶네요. 그리고 유대인에게 또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은 "방치된 위선"인것 같아요.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허구를 현실로 믿은 채 환상속에서 살아가는 정신질환중에 하나라고 해요. 자신이 너무 거짓말을 많이해서 그 거짓말이 사실인마냥 살아가는 착각의 병인거죠. 저는 바로 위선자들이 이런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person이라는 말은 '배우의 가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요. 사회학이론중에서도 배우의 무대뒤와 무대앞은 다르다고 해요. 바로 양면의 동전같이 인간의 다른 모습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이찬수 목사님은 뒷담화라는 것은 조의 열매의 끝장이라고 표현하더라구요. 그리고 목사님들끼리 만나면 자주 하시는 말씀들이 "들키지 말자"라고 해요. 하지만 들켜야 은혜인것 같아요. 그리고 들켜야 하고요. 그래야 타의에 의해서 벗겨질 수 있으니깐요. 그래서 더 깊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저에게 직면해 보고 싶어요. 오늘 분문에서 "유대인인이라고 하는 너희가"라는 표현을, "기독교사라고 하는 내가?"라고 바꿔보고 싶어요. 할례의 칼자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 기준에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방치된 위선이 나에게는 있지 않았나? 그리고 가르침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나? 점검해보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